“카레, 얼른 일어나! 아침 산책 가야지!”
익숙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어쩐지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 소리에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문 앞으로 달려갔을 텐데. 겨우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시야는 바닥과 지나치게 가까웠고, 눈앞에 보이는 건 늘 보던 푹신한 내 발이 아니었다. 털이 덮인, 커다란 황금빛 발이었다. 이마를 짚으려 손을 뻗었다. 아니, 손이 아니었다. 발이었다. 솜뭉치처럼 푹신하고, 발톱이 삐죽 튀어나온 털북숭이 발. 이 기묘한 상황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때,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내 눈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인간의 모습을 한 나. 내 낯선 모습에 꼬리를 살랑이는 나. 아, 정확히 말하면 내 몸에 들어간 ‘카레’였다. ‘카레’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멍! 멍멍!”
소리는 내가 냈지만, 귀에 들리는 건 ‘멍멍’거리는 소리였다. 입을 열어 “너 누구야?!”라고 외치려 했지만, 튀어나온 건 “으르르르” 하는 거친 소리뿐이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혹시 꿈인가? 나는 털북숭이 몸으로 바닥을 기어 '나'에게 다가갔다.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맑게 말했다.
“카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칭얼대? 빨리 산책 가자!”
그는 현관문으로 향하며 신발을 신었다. 나는 내가 이 몸에 들어왔다는 걸, 그리고 내 강아지인 카레가 내 몸에 들어갔다는 걸 확신했다. 어제의 나는 분명히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나는 골든 리트리버 ‘카레’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낑낑거리며 '나'의 뒤를 쫓았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온갖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동차의 매연 냄새, 옆집 강아지 ‘뭉치’의 소변 냄새, 저 멀리서 풍겨오는 빵집의 고소한 냄새까지.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뇌를 강타하는 듯했다. 나는 이 압도적인 정보량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산책줄을 손에 쥐고 길을 앞장섰다. 나는 인간이었을 때 산책줄을 느슨하게 잡고 카레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두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산책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마치 내가 하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끌었다.
'야, 그거 너무 세게 당기지 마! 목 아프다고!'
나는 속으로 외쳤지만, 목에서는 낑낑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나'는 킥킥 웃으며 말했다.
“아, 카레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꽉 잡고 가는 거!”
'나'는 줄을 더 세게 당겼다. 나는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내가 카레와 산책할 때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맞춰야 하는 거였는데.
놀이터 근처에 다다르자, '나'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리고는 흙바닥에 그대로 몸을 뒹굴었다. 나는 경악했다. 내 몸에 들어간 카레가, 내 몸을 흙바닥에 문지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짖어댔다. '야! 정신 차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뒹굴고 또 뒹굴었다. 나는 내가 카레에게 '왜 자꾸 흙에 몸을 비비니?'라며 혼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카레는 그냥 행복해서 그랬던 건데.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거의 녹초가 되었다. '나'는 지친 내 모습을 보고는 물그릇을 턱 내밀었다. 나는 헐레벌떡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살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씽크대 앞에서 내 밥그릇을 꺼내더니, 사료를 가득 부었다. 나는 내가 '카레'의 밥을 줄 때 얼마나 건성으로 주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카레'를 '키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카레'의 입장이 되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반려견을 얼마나 모른 척 지나쳐왔을까. 얼마나 무심하게 대했을까. 나는 사료 그릇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기묘한 삶을 나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그리고 언제쯤 나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